1. 원두에도 크기 기준이 있다? 스크린 사이즈란 무엇인가
커피 원두를 살펴보다 보면 ‘스크린 사이즈(Screen Size)’라는 단어를 종종 보게 됩니다. 처음 접하면 무슨 말인지 감이 잘 오지 않지만, 사실 이건 커피 생두의 ‘크기’를 분류하는 국제적인 표준이에요. 스크린 사이즈는 보통 1부터 20까지 숫자로 구분되며, 이 숫자는 1/64인치 단위로 측정됩니다. 예를 들어 스크린 사이즈 18은 원두 지름이 약 7.1mm 정도 되는 거예요. 생두를 체(스크린)에 넣고 흔들어서 구멍 사이로 빠지는 크기를 기준으로 측정하는 방식인데, 실제로는 생산국이나 수출 기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스페셜티 커피는 스크린 사이즈가 15 이상인 생두를 사용하며, 17~18 이상을 ‘프리미엄’ 등급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아요. 생두의 크기가 고르게 선별돼 있다는 건 품질 관리가 잘 이루어졌다는 신호이기도 하죠. 왜냐하면 크기가 제각각인 생두는 로스팅 시 열이 고르게 전달되지 않아 일부는 과하게 볶이고, 일부는 덜 볶이는 등 맛의 균형이 무너지기 쉬워요. 그래서 좋은 로스터리일수록 선별된 사이즈의 생두를 사용하고, 핸드픽(결점두 제거)까지 정성스럽게 진행해요. 단순히 크기가 큰 원두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지만, 스크린 사이즈는 원두의 품질, 수율, 가공 방식까지 함께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우리가 카페나 온라인에서 “G1” “AA” “SHG” 같은 등급명을 보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스크린 사이즈 체계와 맞물려 있어요.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 G1은 ‘Grade 1’로, 결점두가 거의 없고 크기가 일정한 프리미엄 생두를 의미하죠. 케냐 AA는 스크린 사이즈 17~18에 해당하는 최상급 원두를 말하고, SHG(Strictly High Grown)는 고도 1,200m 이상 고산지에서 자란 고품질 원두를 지칭합니다. 이처럼 스크린 사이즈는 단순한 크기 표시가 아니라, 커피 품질을 판별하는 기준이자,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출발점’을 가늠하는 중요한 정보인 셈이에요.
2. 크기가 맛에 영향을 준다고? 스크린 사이즈와 향미의 상관관계
스크린 사이즈가 단순히 원두의 크기만을 말하는 걸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 크기는 향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변수입니다. 커피는 농산물이기 때문에 기후, 고도, 토양뿐 아니라 열매 하나하나의 크기와 밀도도 맛에 영향을 줘요. 일반적으로 크기가 큰 생두는 더 천천히 자란 경우가 많고, 이런 원두는 밀도가 높아 향미가 더 복합적이고 뚜렷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고산지에서 천천히 익은 원두는 안쪽까지 영양이 고르게 퍼져 있어 로스팅 시 열의 반응이 깊게 들어가죠. 반면 작은 원두는 상대적으로 익는 속도가 빠르고 밀도도 낮은 경우가 많아서, 산미가 두드러지거나 짧고 밝은 향미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건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고, 품종, 가공 방식, 로스팅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요. 하지만 대체로 같은 품종, 같은 환경에서 수확된 원두라면, 스크린 사이즈가 큰 원두 쪽이 향미가 더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맛을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로스터들은 동일한 로트(Lot) 안에서도 스크린 사이즈를 선별하여, 더 깊은 맛을 원하는 블렌딩이나 싱글 오리진으로 활용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스크린 사이즈 17 이상만을 모아 단독 로스팅을 하거나, G1 등급만 모아서 디저트 페어링용으로 출시하는 식이죠. 다만, 맛이라는 건 결국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큰 원두가 무조건 맛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산뜻하고 가벼운 커피를 선호하는 분들에겐 오히려 작은 스크린 사이즈에서 오는 빠른 추출감과 날렵한 산미가 더 매력적일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이 스크린 사이즈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내가 마시는 커피의 개성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힌트라는 점이에요.
3. 좋은 커피를 고르기 위한 실전 팁 – 사이즈 vs 품질, 어떻게 봐야 할까?
스크린 사이즈를 알게 되었다고 해도, 막상 원두를 고를 때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습니다. 크기가 크다고 무조건 고급이고, 작다고 나쁜 원두는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구매할 때는 몇 가지 기준을 함께 고려하면 훨씬 실용적인 선택이 가능해요. 첫 번째는 원산지의 등급 체계입니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는 G1~G5 등급으로 나뉘고, 케냐는 AA, AB, PB 등으로 구분돼요. 이 중 G1이나 AA는 일반적으로 스크린 사이즈가 크고, 결점두 비율이 낮은 고등급 원두입니다. 두 번째는 로스팅 스타일과 추출 도구입니다. 크기가 큰 원두는 밀도가 높고 수분 함량도 일정해서 로스팅 시 내부까지 천천히 열이 전달되며, 이는 추출할 때 안정적인 바디감과 긴 여운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반면 크기가 작은 원두는 단시간에 맛이 추출되어 에어로프레스나 드립처럼 빠른 추출에 어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세 번째는 내가 원하는 맛의 방향이에요. 묵직하고 초콜릿 같은 여운을 원하는 사람은 스크린 사이즈가 큰 AA, SHB 등급을 고르는 것이 좋고, 상큼하고 가벼운 향미를 좋아한다면 AB나 G2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는 로스터리의 설명을 꼭 참고해야 해요. 요즘은 원두 정보에 스크린 사이즈나 결점두 등급, 로스팅 커브까지 상세히 표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순히 원산지만 보고 고르기보다 그 안의 정보들을 꼼꼼히 읽는 습관이 중요해요. 나에게 맞는 원두를 찾는다는 건, 단순히 좋은 원두를 찾는 게 아니라, 나만의 커피 기준을 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기준이 생기면 이후에 다른 원두를 선택할 때도 훨씬 수월해지고, 커피에 대한 이해도 훨씬 깊어져요.